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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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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그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자신의 서재로 나와 함께
글쓴이: 114m.com  조회: 2103   추천: 516
 그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자신의 서재로 나와 함께 부상당한 사람을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였다.

이미 거기에는 군인들의 추격을 피해 숨어 들어온 몇 명의 대학생들이 있었다.

공수부대원 하나가 군화도 벗지 않은 채 소*총을 들고 들어갔으니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불빛에 사람을 내려놓고 보니 이미 혼수 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었는데 이건 말이 아니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노동자 같았는데, 머리는 진*압봉에 맞아 15센티 이상 벌어지고,

한쪽 팔도 맞ㅈ아 부러졌는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을 그 목사님의 서재에서 몇 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보내고 이튿날 새벽 혼자 부대에 복귀하였다.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이로 말미암아 부대 내에서 상급자들과 지휘관들에게 맞ㅈ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때 학생들이 살*해된 동료들의 시ㅅ신을 끌고 가며 처절하게 절*규하며 울부짖고 노래하던 그 소리들을 듣는다.

나는 내가 업고 들어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또 살았는지 죽ㅇ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그 교회는 학일동에 있는 ‘광주 새교회’이고, 그 목사님의 성함이 정인보였다는 것,

그리고 당시 백발이 성성하셨던 그 목사님은 지금쯤 이미 고인이 되셨을 것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내가 부대에 복귀한 21일은 광주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날일 것이다.

나의 부대 복귀가 무전으로 지휘관에게 알려지고, 나는 우리 부대가 쉬고 있던 상무대로 트럭을 타고 가게 되었는데,

군복에 피ㅍ가 범벅되어 돌아온 나의 모습을 보고 직속 상관은 대ㄴ노하면서 나를 심히 다루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나는 그가 내게 한 말이 가슴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밤새 나 때문에 애태운 것을 생각하면 화도 날 만하겠지만, 그는 내가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고 평소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아닌지라 극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하였다.

그의 말인즉 비상 계*엄하에서 부대 이탈이란 즉결 처*형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네가 밤새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다 아는데, 여기는 전ㅈ쟁터이니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바로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말하며 나의 부대 이탈에 대해 얼마간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은

그 중대장과 다른 지휘관들의 처리에 일말의 고마움을 느낀다.

이 날 21일 오전, 우리는 걸어서 광주도청에 도착하였다.

거기에는 우리 여단의 모든 병력이 집결해 있었는데, 밤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시*위대들이 격ㄴ노하여

차량으로 무*장하고 군인들과 무력으로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군수 공장에서

탈ㅊ취한 도시형 장갑차를 몰고 돌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광주 청문회 당시 부대를 지휘한 자가 이 부분을 거론하며 시*위대의 장갑차에 의해 군인들이 희*생당하면서

발*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법원의 최종적인 기록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시*위대가 장갑차를 몰고 도청 앞에 나타날 때에는 거리에 군인들이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도청 앞에서 우회전하여 빠져나가고 말았다.

장갑차에 의해 공수부대원이 치어 죽ㅇ은 것은 당시 우리 여단에서 몰고 다니며 사ㄱ격을 하던 군인 장갑차에 의해서이다.

나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하였는데,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시*위를 보장받으려던

사람들이 협상이 안 되니까 급기야는 차량을 몰고 돌진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다급해진 군부대의 장갑차가 급히 퇴각을 하면서 넘어진 군인을 덮치게 되고,

그가 현장에서 즉ㅅ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장갑차의 무한궤도 밑에 하반신이 깔린 그 병사의 상체가 위로 들려지며 입에서

붉은 피를 쏟아내던 처ㅊ참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특전사에 배속된지 얼마 안 되는 신참내기 병사였다.

충장로 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파이프나 몽둥이로 무*장을 하거나 트럭이나 버스를 탄 시민들이

군인들과 대치하게 되었을 때, 너무도 사태가 위*험하고 다급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당황하던

부대 지휘관들의 안쓰러운 모습도 생각난다. 나는 비교적 대치선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생명의 위ㅎ협을 덜 받았으나,

아마 최전방에서 시*위대와 가까운 거리를 두고 대치하던 군인들은 그들이 차량으로 돌진하려 할 때에

매우 큰 불안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하늘에서는 계속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는 헬기의 방송이 나오고,

학생들의 구호와 노래 소리는 처연한데, 천여 명의 특전 요원들과 수만의 시*위대의 일전을 앞둔 이 일촉즉발의

다급한 상황을 그 앞에서 직접 서 본 사람이 아니면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이런 일이 발생하기전 비교적 아침 이른 시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도청 분수대 앞에서

시*위대와 군인들이 대치를 하고 있는데, 시내버스를 탄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시*위대를 뚫고 나가

군인들에게 위ㅎ협적으로 돌진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놀란 군인들이 흩어지고 그 차량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추게 되었는데,

이에 화가 치민 군인들은 분풀이라도 하듯 갑자기 길가로 뛰어들어 지나가는 시민들을 두*들겨 패ㅍ기 시작하였다.

마침 고무신을 신고 잠바차림으로 길을 지나던 40, 50대의 남자가 군인들에게 걸려들었고,

그는 금새 진*압봉에 맞ㅈ아 기*절하였다. 주변의 사태는 점차 술렁이며 다급해져 갔다.

나는 아무래도 그대로 두었다가는 그 사람의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아서 급히 뛰어들어

그를 안고 피신시키려 했다. 덩치가 큰 사람이었고 내 힘만으로는 부쳐 쩔쩔매고 있는데,

다른 대대의 중사 한 사람이 뛰어들어 도와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수백 명의 공수 요원들이 이를 보았고, 우리는 그를 끌고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 후 시민들에게

이 사람을 좀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왔다. 그때 같은 중대의 상급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내게 대*검을 들이밀면서 너 죽*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그때 그 질문은 내게 부질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런 내게 그는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너부터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우리가 부상당한 사람을 질질 끌어 그늘지고 안전한 곳에 대피시킨 후 멀리 서 있던

시민들을 향해 보살펴 달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올 때, 차마 군인들이 두려워 가까이 오지는 못하지만

그들 중에는 우리에게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던가.

전일빌딩으로 기억되는데, 그 앞에서 대치할 때에 청년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군인들에게 욕ㅈ지거리를 퍼붓는 일도 있었다.

화가 난 군인들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잠시 후에 그는 피가 낭자한 채 끌려오게 되었는데, 대*검을 목에 대고 죽*이겠다고

위ㅎ협하는 군인들에게 창백하게 질려 살려 달라고 애걸하던 그의 공ㅍ포에 질린 눈과 모습 또한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의 나는 일병 계급의 신분으로 격*노한 상급자들의 살*해 의지를 느끼면서 감히 말리지 못하였다.

끌려간 그 사람은 그때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21일의 도청 앞 발*포사건은 돌진하던 시*위대 차량들로 인해 퇴각하던 군인 장갑차에 의해

우리 대대에 속한 병사가 깔려 주죽ㄴ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일어났다. 장갑차가 밀려나면서 공수요원들의

저지선이 완전히 무너졌고, 도청 앞 광장은 돌진하는 시*위대와 그들의 차량들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다급해진 군인들은 누구에 의해서인지 모르나 사*격으로 대응하였다. 발포와 함께 시*위대는 흩어졌고,

우리는 도로에 낮은 포복으로 엎드려 몸을 숨기고 있어야만 했다.

내 기억에는 그때 장갑차가 도로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캘리버 50 기관총으로 무수하게 사ㄱ격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위ㅎ협 사격이 아니고 분명 실제 조준 사*격이었다. 어떤 자는 도청 앞에서 시*위대에 의해 발포가

시작되어 대응사*격을 하였노라고 말하기도 한 모양이나, 내가 알기로는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시민들이 무*기를 탈ㅊ취하고 무*력으로 대응한 것은 이런 일들에 의해 군인의 사*격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지,

먼저 하였거나 함께 사*격으로 맞대응한 것이 아니다. 그때는 수백 명의 군인들이 도청 앞 도로에서

무방비 상태로 엎드려 있었는데,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시*위대로부터 총*격을 입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만약 그랬다면 노출된 우리 중에 하다 못해 다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더구나 오후 4시쯤 도청에 있던 우리 여단의 병사들이 조선대로 퇴각할 때 도로를 걸어서 퇴각하였는데,

만약 이때에 시*위대가 총을 가지고 사*격을 할 수 있었다면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을까?

도청에서 조선대로 퇴각한 후 우리는 곧바로 긴급한 철수 명령을 받았다.

이 때에 조선대 광장에서 장갑차가 학교 주변의 주민들과 아이들, 그리고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을 향해

계속해서 사ㄱ격을 해댄 것도 기억이 난다. 철수하는 군인들을 보호하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은데,

여기서 실제로 조준사*격을 하였는지 아니면 위*협 사*격으로 사람들을 흩뜨리기만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급히 짐을 챙겼고, 저녁 7시 경 어두울 즈음 급히 조선대를 떠났는데,

주요한 문서나 장비들을 트럭에 싣고 떠나야 했던 본부대 병력이 시내를 빠져 나오다가

시*위대의 총ㄱ격을 받고 몇 사람이 죽*는 최초의 군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 밤새 걸었고,

그 다음날인 22일 오전 11시쯤 되어서야 도착한 곳이 무등산 깊은 골짜기임을 알았다.

거기에는 우리 여단 전 병력뿐 아니라 확실치는 않으나 다른 여단의 병사들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거기서 수송기를 통해 보급된 식량 및 일인당 580발의 실탄 그리고 수류*탄이나 가스*탄 등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 모두는 지친 몸을 쉬며 작전 명령을 기다렸다. 우리는 야만의 숲에 갇힌 맹수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산중에서는 아마 포로로 잡아 왔던 대학생을 총*살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일을 나는 보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목격한 다른 대대의 병사 하나가 내가 아는 후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왜 이런 부대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더란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당시 그 일은 부대 내에서 소문으로 돌기도 하였는데, 그로부터 10여 년 후 공수부대가 머물렀던

그곳에서 총*상을 입은 유골이 발견되어 그것의 증거가 되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다른 대대의 한 중대가 국도변에서 매복을 하다가 시*위대 차량을 발견하고

집중 사*격을 하여 많은 숫자의 학생들을 사*살한 일도 발생하였는데, 당시 그 버스에 탔다가 유일하게 생존하여 후에

그 일을 증언한 한 여학생은 군인들이 피ㅌ투성이가 된 학생들을 하나하나 확인 사*살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밝혀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무등산 골짜기에서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을 머물렀고, 그 후 도청이나 광주 주요 시설들에

대한 탈환 작전 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사이 이상하게도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가는 취소된 적도 있었다.

아마 많은 희생자를 내야 하는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해 한미 군부 내에서 이견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보는데,

나는 아주 오랜 후에야 전*쟁에 대비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데프콘Ⅲ의 상황에서는 군 작전지휘권이 한미연합사로

넘어가고 미군측의 허락과 동의 없이는 어떤 군사적 행위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을 알았다.

무등산에서 멀리 어둠에 잠긴 광주를 바라보는 것은 처량한 일이었다.

이미 진*압군들은 시내에서 다 떠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밤만 되면 콩볶듯하는 총*소리가 밤새 끊이지를 않았다.

23일 밤인가 시내 진입 작전 지시가 있었다가 취소된 적이 있었고, 그때 피로에 지친 동료 병사들이 텐트에서

골아 떨어져 자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연이은 작전과 행군으로 우리는 지쳐 있었다.

물이 없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면도도 하지 못한 채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한 순간 뒤에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를 생각지 못하고 그저 배불리 먹고 씩씩대며 자던 그 단순한 얼굴들……

나는 아무래도 임박한 시내 진입과 주요 시설 탈*환을 위한 작전에서 큰 희*생자가 나고

또 내 생명도 위*태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고, 텐트에서 나와 좀 떨어진 한적한 바위 밑에서 기도를 하였다.

너무 피로했고 또 단조로운 군생활에 아둔해져서인지 또렷한 의식을 차리기 어려웠지만,

“하나님, 제가 그래도 목사가 되겠노라고 신학대학을 다니던 사람인데, 이제는 무죄한 사람을 죽ㅇ이여야만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제가 언제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죽ㅇ이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으니 나로 이 궁지를 벗어나 죽*이지도 말고

죽*지도 말게 도와주십시오”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당시 계절은 신록의 봄으로 산하는 한없이 푸르렀고 생명감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5월 24일, 이 날은 나뿐 아니라 많은 병사들과 시민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요 처*참한 비*극의 날이 된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철수 명령이 떨어졌는데,

산 속에 비트를 파고 숨겨 논 배낭과 장비들까지 다 가지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투나 작전을 하기 위한 출동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철수하는 것임을 뜻하였다. 광주 외곽에 있는 송정리 비행장으로 새 거처를 잡고 아마 거기에서

최종적으로 시내 탈*환을 위한 작전을 시행하려고 한 모양인데, 천여명의 병사들이 수십 대의 군용 차량에 탑승하여 장갑차를

앞세우고 비행장으로 출발한 것은 오후 1시경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미 우리들은 개인당 580발의 실*탄과 수류*탄이나 가스*탄등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시*위대의 기습에 대비하여 실*탄을 장전하고 경계하며 차량 이동을 하게 되었다.

국도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던 중 간간이 민간 마을을 향해 사*격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곳은 광주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고 마을의 주민들이나 아이들도 시내의

소요와는 무관하게 평소처럼 모내기를 하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그런 곳이었는데,

지금도 나는 왜 군인들이 그런 마을을 지나며 사ㄱ격을 해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 두발씩 들리던 총ㅅ성은 이내 콩볶는 듯 하는 요란한 소음으로 바뀌었고, 논에서 모내기를 하던 농부들이나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총ㅅ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흩어지고

자빠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군인들의 말로는 시*위대가 나타나 그랬다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당시 사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실*탄 장전이 된 소*총을 가진 군인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본능적으로 사*격을 해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후에 알고 보니 이런 와중에 애꿎게 총에 맞*아죽*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여럿이었다.

잠시 후 송암동이라는 곳에서는 그러한 것보다 더 끔찍하고 내가 경험한 광주사태 중 가장 처*참한 일이 벌어진다.

광주 보병학교 일개 중대가 무반동포로 무*장하고 매복하다가 장갑차를 앞세운 공수부대 차량이 나타나자 이를

시*위대 차량으로 오해하여 사*격을 해대는 일이 발생한 것이 그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고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그때 나는 도대체 어떻게 군인들이 평온한 주택가를 향해 사격을 해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며 몸을 숨기지 않고 바라보다가

머리 부분에 총ㅅ상상을 입는 일을 당했다.

보병학교 병사들은 무반동포로 앞서 가던 장갑차를 명중시켜 깨어 버렸고,

뒤따르던 차량들을 향해서도 계속 공*격했다. 갑자기 폭*발음들이 사방에서 나며 총*격이 가해 오자

당황한 우리 쪽 군인들은 사*격으로 대응하거나 차량에서 뛰어내려 급히 길 옆 도랑으로 피신했다.

내가 처음 무언가 내 신체에 총*격이 가해진 것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총*격을 입고 무너지듯 힘없이 쓰러졌다. 분명 머리 뒷부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아련히 의식하였는데,

그토록 갑자기 찾아온 죽*금으로 인하여 공*포와 허무함이 가슴 가득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닥친 것일까? 나는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또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죽*금에 대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가족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슬픔이었는데,

나의 죽*금이 알려질 때에 비*탄에 빠져 괴로워할 그분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나 자신의 실상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희미하나마 의식이 있었고,

만약 죽*더라도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가 어디에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었고 어떤 상태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나를 확인했다. 머리 뒤를 만졌는데 피가 낭자했다.

 

그리고 그 다음 얼굴을 더듬었는데, 이는 만약총*알이 머리 뒷부분을 때리고 관ㅌ통했다면 앞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굴을 더듬어 보았으나 구멍은 없었고 뒷머리 부분의 상처도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멀리서 손짓하는 불빛처럼 깜박였다.

차 안에는 나 홀로 누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차에서 뛰어내려 도피하는 동료들이 보였고,

사방에서 들려 오는 폭*발음과 총*격 소리, 무엇보다 살아나려면 빨리 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몸을 일으켜 차량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거대한 폭*발발음파 함께 내 몸이 천만 갈래로 찢ㅇ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나뒹굴게 되는 두 번째의 변을 당했다.

아마 무반동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내 주변에 터진 것이었다. 폭*발에 휩싸이는 순간 나는 온몸이 큰 방망이로 맞고

찢*기는 듯한 큰 고통을 느꼈고. 다가온 주금 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소리 치며 울부짖어야만 하였다.


독자 : 내가 경험한 광주사태 중 가장 처*참한 일이 벌어진다.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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